참사로 밝혀진 여객기-헬기 충돌 사고

지난 1월 29일 밤(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 인근에서 발생한 항공기 충돌 사고로 탑승자 67명이 전원 사망한 것으로 확인됐다. 사고기는 아메리칸항공 소속 여객기와 미 육군 헬기로, 두 항공기 모두 포토맥강으로 추락했다.
워싱턴 DC 소방당국은 30일 기자회견을 통해 "구조 작업을 중단하고 시신 수습 작업으로 전환할 시점"이라며 "생존자는 없는 것으로 판단된다"라고 밝혔다.
사고는 로널드 레이건 공항에 착륙을 시도하던 여객기와 훈련 중이던 헬기가 같은 고도에서 충돌하면서 발생했다. 여객기에는 승객 60명과 승무원 4명 등 총 64명이 탑승했고, 헬기에는 군인 3명이 타고 있었다. 당국은 현재까지 여객기에서 27구, 헬기에서 1구의 시신을 수습했다.
충격적인 사실은 사고기에 한국계 피겨스케이팅 선수 두 명이 타고 있었다는 점이다. 한국계 미국인 여자 피겨 유망주 지나 한(Jinna Han)과 한국에서 입양된 10대 남자 선수 스펜서 레인이 그들이다. 특히 스펜서 레인의 부모는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아들의 한국 입양 사실을 직접 밝혔다. 또한, 두 선수의 모친들도 사고기에 함께 타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외에도 1994년 세계 피겨선수권 챔피언인 러시아 출신 예브게니아 슈슈코바와 바딤 나우모프 부부를 포함한 전·현직 피겨 선수와 코치 약 20명이 여객기에 탑승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사고 원인과 관제 시스템 문제 제기

이번 충돌 사고의 직접적인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핵심 조사 대상은 두 항공기가 동일한 고도에서 비행했던 이유다.
사고 당시 촬영된 영상에서는 착륙을 준비하던 여객기를 향해 헬기가 다가가면서 충돌과 동시에 화염이 발생하는 장면이 포착됐다. AP통신에 따르면, 공항 관제사가 헬기 조종사에게 "여객기와 충돌을 조심하라"라고 무전했으나, 이후 곧바로 사고가 일어났다.
미 연방항공청(FAA)의 내부 보고서에 따르면, 사고가 발생한 로널드 레이건 공항의 관제 인력이 부족했던 것으로 보인다. 뉴욕타임스(NYT)는 당시 관제탑 근무 인력이 정상보다 적었으며, 헬기를 담당하는 관제사가 활주로의 여객기 이착륙 업무까지 떠맡고 있었다고 보도했다.
FAA는 레이건 공항의 적정 관제사 인원이 30명이어야 하지만, 2023년 9월 기준으로 19명만 근무하고 있었다고 밝혔다. 관제사 노동조합 역시 30명 충원을 요구해 왔지만, 인력 부족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이번 사고가 관제 시스템의 한계를 드러낸 사례로 평가되는 이유다.

정치적 논란으로 번진 항공기 사고

사고 이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사고의 책임을 바이든 행정부에 돌리며 논란을 일으켰다.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 브리핑에서 "헬기는 수백만 가지 다른 기동을 할 수 있었지만, 그냥 그대로 갔다"며 "두 항공기는 같은 고도에 있어서는 안 됐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바이든 행정부의 '다양성·형평성·포용성(DEI)' 정책이 관제 시스템과 항공 안전을 악화시켰다고 주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FAA의 다양성 정책에는 심각한 정신적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채용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며, 전임 정부가 인종·성별·사회적 배경을 고려해 항공관제 인력을 뽑았기 때문에 능력이 부족한 사람들이 채용됐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이에 대한 구체적인 근거는 제시하지 않았다.
또한, 트럼프 대통령은 공항 관제사와 헬기 조종사에게도 책임을 돌리며 "그들이 잘못된 판단을 했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군 당국은 "정기적인 훈련 중 실수가 발생한 것"이라며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과 선을 그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사고 희생자 유가족과 만날 예정이지만, 사고 현장을 직접 방문할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최악의 항공 참사로 기록될 가능성

이번 사고는 2001년 11월 뉴욕 존 F. 케네디 국제공항에서 출발한 아메리칸항공 여객기가 이륙 직후 추락해 260명이 사망한 이후 미국에서 가장 큰 인명 피해를 낸 항공기 사고로 기록될 가능성이 높다.
사고 직후 폐쇄됐던 로널드 레이건 공항은 30일 정오부터 항공기 운항을 재개했지만, 수십 개의 항공편이 취소되거나 지연되는 등 여전히 혼란이 이어지고 있다.
한편, 사고 조사를 맡은 미 국가교통안전위원회(NTSB)는 아직 여객기의 블랙박스를 회수하지 못한 상태다. 블랙박스는 사고 당시 조종석 내 대화와 비행 데이터를 기록하고 있어 사고 원인 규명에 중요한 단서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NTSB는 향후 30일 내에 예비 조사 보고서를 발표할 계획이다. 조사 결과에 따라 항공 교통관제 시스템의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질 가능성이 있다.
이번 사고는 워싱턴 DC에 위치한 레이건 공항이 미국에서 가장 복잡한 공항 중 하나로 꼽히는 이유를 다시금 상기시키고 있다. 공항은 백악관과 연방의회에서 불과 4.8km 떨어져 있어 보안 통제가 엄격하며, 인근에는 수많은 군사·정부 시설이 밀집해 있다. 이러한 환경에서 착륙하려면 강을 따라 비행해야 하며, 헬기 운항도 빈번하게 이루어진다.
결국, 이번 참사는 단순한 항공 사고가 아니라 미국의 항공 교통 시스템과 관제 인력 부족 문제를 재조명하는 계기가 될 전망이다. 앞으로의 조사 결과와 후속 조치가 사고 재발 방지를 위한 중요한 전환점이 될지 관심이 집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