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극에서 비롯된 변화, 유가족 지원 강화의 시작

1996년 7월 17일, 뉴욕 존 F. 케네디 국제공항을 이륙한 TWA 800편 항공기가 대서양 상공에서 폭발했다. 승객과 승무원 230명 전원이 사망한 이 사고는 당시 미국 역사상 가장 치명적인 항공 재난 중 하나로 기록됐다. 사고 원인을 규명하는 과정은 장기적이고 복잡한 절차를 거쳤으며, 그 과정에서 유가족들은 정보를 얻기 어려운 현실에 직면해야 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항공 사고 피해자 가족을 체계적으로 지원하기 위한 법안이 마련됐다. ‘항공 재난 유가족 지원법(Aviation Disaster Family Assistance Act)’이 1996년 미국 의회를 통과하면서, 정부와 항공사는 사고 이후 유가족에게 신속하고 충분한 정보를 제공해야 하는 의무를 갖게 됐다.

TWA 800편 사고 조사, 4년간의 긴 여정

사고 발생 후 미국 교통안전위원회(NTSB)는 미 해군과 해안경비대, 민간 어선 등을 동원해 대서양 바닷속에 가라앉은 기체 잔해를 인양하는 대규모 작업을 벌였다. 95% 이상의 기체가 회수됐고, 약 1년 후에는 모든 희생자의 유해가 발견됐다.
이 사고는 미 항공 역사상 가장 광범위하고 비용이 많이 소요된 조사 중 하나로 기록됐다. 초기에는 테러나 미사일 공격 가능성이 제기되었지만, 4년에 걸친 조사 끝에 NTSB는 전기 단락으로 인해 중앙 연료 탱크의 증기가 폭발하면서 사고가 발생했다고 결론지었다. 그러나 최초의 발화 지점은 끝내 특정되지 않았다.
유가족들은 사고 원인 규명을 요구하면서도, 사건의 복잡성을 이해하려는 모습도 보였다. 1997년, 사고기 잔해를 본 유가족 호세 크레마데스는 “비행기가 완전히 산산조각 났다는 것을 확인했다. FBI와 NTSB가 얼마나 복잡하고 방대한 조사를 수행하는지 직접 보고 나니 그들의 노력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항공 사고 유가족 지원법, 사고 대응 체계의 변화

TWA 800편 사고 이후 항공 재난 대응 방식이 대대적으로 개편됐다. 1996년 제정된 ‘항공 재난 유가족 지원법’은 사고 발생 시 피해자 가족이 정보와 지원을 신속하게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법에 따라, 항공사는 유가족 지원 계획을 수립해야 하며, 사고 발생 시 유가족을 위한 18가지 필수 조치를 준수해야 한다. 또한, NTSB는 연방 정부 차원에서 유가족 지원을 총괄하며, 지방 정부 및 재난 구호 기관과 협력해 신속한 대응을 펼쳐야 한다.
전 NTSB 국장 피터 괄츠는 2000년 CNN과의 인터뷰에서 “사고 발생 후 유가족은 언론보다 먼저 정부로부터 정보를 제공받고, 정기적인 브리핑을 통해 진행 상황을 공유받는다”며, “가족들이 겪는 고통을 더욱 가중시키지 않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최근 항공 사고에서의 유가족 지원, 어떻게 이루어졌나

최근 미국 워싱턴 D.C.에서 발생한 군용 헬기와 민항기 충돌 사고, 필라델피아에서의 응급 의료용 제트기 추락 사고에서도 이 법안이 즉각 적용됐다.
사고 발생 직후, NTSB는 피해자 가족을 대상으로 한 브리핑을 실시했다. 토드 인먼 NTSB 대변인은 “현재 100명 이상의 유가족이 현장에서 사고 수습 진행 상황을 듣고 있다”며, “의무적으로 시행되는 유가족 지원 활동의 일환”이라고 밝혔다.
미국 항공사들도 적극적으로 지원에 나섰다. 아메리칸 항공은 사고 다음 날 새벽부터 전담 CARE 팀을 투입해 유가족들에게 심리적 지원과 실질적인 도움을 제공했다. CARE 팀은 24시간 대기하며 가족들의 여행 및 숙박을 지원하고, 필요할 경우 아이 돌봄, 노인 간호, 반려동물 보호 등의 조치도 제공한다.
또한, 이 법안은 NTSB가 독립적인 비영리 단체(예: 미국 적십자사)를 지정해 사고 피해자 및 유가족의 정신적·심리적 안정을 지원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사고 원인 규명과 향후 과제
한편, 최근 워싱턴 D.C.에서 발생한 항공기 충돌 사고에 대해 팀 케인 민주당 상원의원은 “NTSB가 철저한 조사를 통해 사고 원인을 밝힐 것”이라며, “조사 결과에 따라 의회와 행정부가 협력해 필요한 해결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NTSB는 충돌 사고의 원인을 30일 내에 예비 보고서 형태로 발표할 예정이다. 하지만 유가족들에게는 그 시간이 영원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한 피해자의 남편 앤디 베이어는 CNN과의 인터뷰에서 “아직도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며, “딸과 아내가 함께 있던 방의 문을 열어볼 엄두조차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TWA 800편 사고 이후 30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지만, 항공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피해자 가족들은 여전히 같은 슬픔과 혼란을 겪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고통을 최소화하기 위한 지원 체계는 지속적으로 발전해 왔으며, 앞으로도 더욱 강화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